연가시부터 광견병까지, 현실에서 ‘좀비의 부품’을 찾아봤습니다.
⚠️ 이 글에는 영화 〈부산행〉의 주요 장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타 설명
〈부산행〉에서 사람들은 정체불명의 감염병에 걸린 뒤 순식간에 이성을 잃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자연계에는 숙주의 행동을 바꾸는 기생체가 실제로 존재하고, 인간의 뇌와 행동을 변화시키는 감염병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 속 좀비는 정말 완전히 불가능한 존재일까요?
🧟♂️ 사람을 물자마자 좀비가 된다. 그런데 정말 말이 안 될까?
〈부산행〉 초반, 한 여성이 기차에 올라탑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뒤틀기 시작하고, 눈빛이 변하고, 결국 다른 승객에게 달려듭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물린 승객도 똑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물리고, 변하고, 다시 다른 사람을 물고.
영화 속 감염은 마치 도미노처럼 퍼져나갑니다.
처음 〈부산행〉을 봤다면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좀비 영화니까 그렇지. 사람이 감염됐다고 갑자기 사람을 물어뜯는 게 말이 되나?”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사람이 감염 때문에 행동 자체가 달라지는 것까지 정말 불가능할까요?
놀랍게도 답은 아닙니다.
자연계에는 실제로 다른 생물의 행동을 바꾸는 기생체가 있습니다.
🪱 자연에는 진짜 ‘좀비’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연가시입니다.
연가시는 곤충을 숙주로 삼아 성장한 뒤 물속으로 나가야 다음 생애주기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곤충이 물속으로 뛰어들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연가시에 감염된 곤충에서는 물을 향해 이동하는 행동이 나타납니다.
기생체 입장에서는 꽤 영리한 전략입니다.
숙주의 몸을 이용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숙주의 행동까지 자신의 생존에 맞게 바꿔버리는 겁니다.
좀비개미도 있습니다.
Ophiocordyceps 계열의 곰팡이에 감염된 개미는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이고, 곰팡이가 포자를 퍼뜨리기 좋은 위치에서 죽도록 유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 질문에는 답이 나옵니다.
“감염체가 숙주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가?”
가능합니다.
자연계에서는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요?
🧠 인간의 행동을 바꾸는 감염병도 있다
여기서 〈부산행〉의 좀비와 가장 자주 비교되는 질환이 광견병입니다.
광견병 바이러스는 중추신경계를 침범하고, 감염이 진행되면 뇌 기능에 심각한 이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특히 흥분형 광견병에서는 불안과 극심한 흥분, 혼란, 환각, 과민 반응 등이 나타날 수 있고 공격적인 행동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 속 좀비를 떠올려보면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감염된다.
↓
뇌가 영향을 받는다.
↓
행동이 달라진다.
↓
극단적인 경우 공격적인 행동까지 나타난다.
물론 광견병 환자가 〈부산행〉의 좀비처럼 사람을 찾아 뛰어다닌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감염병이 사람의 뇌를 건드려 행동을 바꾼다”는 것 자체는 영화적 상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로 광견병 바이러스가 신경계의 신호 전달에 영향을 주는 방식과 행동 변화의 관계를 연구한 실험들도 있습니다.
즉, 감염체와 뇌의 상호작용을 통해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물학적 기반 자체는 존재합니다.
🧟 그렇다면 좀비 바이러스는 가능할까?
여기서부터가 재미있습니다.
실제로 2021년에는 광견병과 좀비 바이러스의 가능성을 연결해 생각해본 리뷰 논문도 발표됐습니다.
제목부터 꽤 직설적입니다.
“Is evolution toward ‘Zombie virus’ a tangible threat?”
즉,
“광견병 바이러스가 ‘좀비 바이러스’로 진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위협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과학적으로 검토한 겁니다.
물론 이 논문이 “좀비 바이러스가 존재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연구자들조차 ‘감염 → 뇌의 변화 → 행동의 변화 → 다른 사람에게 전파’라는 연결고리를 완전히 허무맹랑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광견병처럼 이미 뇌를 침범하고 행동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가 존재한다면,
“그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 병원체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MedMovie의 판결
🟡 좀비는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저는 〈부산행〉의 좀비를 완전히 불가능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처럼 감염된 사람이 순식간에 이성을 잃고 달려들지는 않더라도,
어떤 병원체가 인간의 뇌와 행동을 변화시키고, 그 결과 감염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물어 병원체를 전달하는 상황 자체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좀비는 아무 근거 없이 만들어진 괴물이 아니라,
현실의 생물학적 현상을 극단적으로 끌어다 붙인 상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상상이 어디까지 현실에 가까워질 수 있는지는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 한 줄 요약
좀비는 영화 속 괴물이지만, 숙주의 행동을 바꾸는 감염체는 현실에도 존재합니다. 어쩌면 〈부산행〉의 좀비는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부산행〉의학 시리즈
② 목을 물리면 좀비가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②편 바로가기
③ 좀비는 통증을 느낄까? 다쳐도 멈추지 않는 이유 ③편 바로가기
※ 저작권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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