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계속 움직이는데, 그 안에 원래의 ‘나’는 남아 있을까요? 몽유병과 자동증을 통해 〈부산행〉의 좀비를 다시 살펴봤습니다.
⚠️ 이 글에는 영화 〈부산행〉의 주요 장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타 설명
〈부산행〉의 감염자들은 말을 잃고, 주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몸은 계속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좀비가 된 순간 그 사람의 의식도 함께 사라진 걸까요?
🧟 몸은 움직이는데, 안에 ‘나’는 있을까?
〈부산행〉에서 가장 섬뜩한 순간은 사람이 좀비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범했던 사람이 갑자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몸은 움직입니다.
뛰고,
기어오르고,
다른 사람을 쫓아갑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 사람 안에는 아직 의식이 남아 있을까?”
혹시 몸은 좀비처럼 움직이고 있지만,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인간은 의식적으로 판단하지 않아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 사람은 의식 없이도 움직인다
가장 익숙한 예가 몽유병입니다.
몽유병이 있는 사람은 잠든 상태에서 침대에서 일어나 걷거나, 주변 물건을 만지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다른 예가 자동증입니다.
일부 뇌전증 발작에서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면서도 입을 움직이거나, 옷을 만지거나, 걸어 다니는 등의 행동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¹
즉,
몸이 움직인다고 반드시 의식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걸 좀비에게 적용해봅시다.
🧟 좀비가 달린다고 ‘의식이 있다’는 뜻일까?
〈부산행〉의 좀비들은 사람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렇다면 의식적으로
“저 사람을 잡아야겠다.”
라고 판단하고 있는 걸까요?
필자는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영화 속 좀비에게는 정상적인 사람에게서 보이는 행동의 흔적이 거의 없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과 정상적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사람을 향해 반복적으로 달려들고 공격합니다.
이 모습은 의식적인 판단을 통해 행동하는 사람보다는, 강한 자극에 의해 자동적으로 행동하는 상태에 더 가깝습니다.
몽유병 환자가 걷는다고 해서 목적지를 의식적으로 정하고 걷는 것은 아니고, 일부 발작에서 자동증이 나타난다고 해서 환자가 그 행동을 의식적으로 계획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좀비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정확한 기전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행동만 놓고 하나를 고르라면,
‘의식이 남아 있는 좀비’보다는 ‘의식적인 판단이 거의 사라진 채 몸이 움직이는 좀비’에 더 가깝다고 봅니다.
🕵️ MedMovie 재수사 결과
좀비가 움직인다는 사실만으로 그 안에 의식이 남아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현실에서도 사람은 의식적인 판단 없이 걷거나 반복적인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산행〉의 좀비는 주변 상황을 이해하거나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판단하는 모습보다, 사람을 향한 공격 행동만 반복합니다.
그래서 영화 속 좀비를 의학적으로 해석한다면,
“내가 좀비가 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보다는
“의식적인 판단은 거의 사라졌지만, 특정 행동만 계속 수행하는 사람”
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이것이 더 무섭습니다.
좀비가 내 친구의 얼굴을 알아보면서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나를 알아볼 ‘나’ 자체가 사라진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 한 줄 요약
움직인다고 의식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산행〉의 좀비는 ‘의식이 있는 사람’보다 ‘의식적인 판단 없이 몸만 움직이는 상태’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부산행〉의학 시리즈
② 목을 물리면 좀비가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②편 바로가기
③ 좀비는 통증을 느낄까? 다쳐도 멈추지 않는 이유 ③편 바로가기
④ 좀비가 된 사람의 의식은 남아 있을까? 〈부산행〉 속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 현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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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1. Epilepsy Foundation. Focal Impaired Awareness Seizures.
일부 뇌전증 발작에서 의식적인 판단이 저하된 상태에서도 자동증과 같은 반복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 있는 내용 참고.


